nanjoo in NYC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이 어떻게 보면 별로 신경이 쓰이지 않는 일이라고 치부해 버리지만, 사실 신경이 쓰이는 것은 맞는 것 같다. 처음 20살 되었을때, 그 어른이 되었다는 들뜬 기분, 30살이 되었을때, 나의 20대가 이룬것 하나 없이 휙 가버렸다고 허무해 할때, 이제 곧 다가올 40에는 나는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궁금하기도 하다. 아직 30살 "중"후반임에 오히려 감사하게 된다. 


철이 한참 지난 팟캐스트를 뒤늦게 발견해 짬짬이 듣고있는 건축 교육 방송이 있다. 거기에서 또 철 지난 전시회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 방송이 2015년 4월에서 5월 무렵 만들어진 것이기에 세월호 참사 1주기 기념하는 행사들의 소개가 나오고 있었다. 그 중 어떤 사진 작가가 세월호 실종 학생들의 "방"을 주제로 전시회를 연다는 소개가 있었다. 그와 함꼐 방송 진행자분들 중 특히 여자분들이 차마 방 사진을 보기가 힘들 것 같다, 오히려 그 친구들의 얼굴을 보는 것보다 그 친구들이 생활했던 방을 보는게 더 힘들 것 같다는 멘트가 나오면서 가슴과 등에서 싸한 기운과 함께 이전까지 못 느껴본 감사함을 느끼게 되었다. 불교를 믿는 분들의 말씀인 것 같긴 한데, 각각의 사람은 모두 우주다 라는 말이 그전에는 그리 와닿지 않았었는데 갑자기 그 멘트와 함께 그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우리 모두는 각자가 살면서 자신도 모르게 만들어가는 우주가 있구나." 


그것을 대표하는 단어가 (적어도 내게 와닿았던) "방"이었다. 방이라는 단어가 건축과 연관이 있어서 조금은 더 신경이 쓰이긴 했지만 괜히 확대 해석 하고 싶지는 않다. 


그 후, 내가 바라보는 지하철 안의 모든 사람들 (여기는 뉴욕이기 때문에 하얀 사람, 까만 사람, 눈 작은 사람등등 많은 인종들이 보였다) 각자가 여기에까지 있게 된 이유, 가만히 앉아서 들으면 참 각자가 틀린 경험들과 삶이 있겠구나. 또 각자들은 그들의 부모들에게 세상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사람들이겠구나. 모두들 여기서 이렇게 존재하는 것 만으로도 다른이에게 행복이고, 그 자체로 하나의 우주를 만들어 가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이전에 없던 자존감이란 놈이 내 가슴 속에서 올라왔다. 이때 느낀 그 자존감과 비교하면 그동안 나는 나의 가치를 인정 받기 위해 무던히 신경을 쓰고 있었던 것 같다. 조금 더 잘 알려지고 좋은 작품을 하는 회사에 가면 내가 좀 더 성장할 수 있겠지, 남들 보다 빨리, 더 많이, 더 잘, 하면 내가 더 나은 사람으로 인정 받을 수 있겠지 생각했던 것들의 가치가 모두 무너져 내리며 내가 왜 그런 것들을 그렇게 중요하게 여겨야 했는지, 내 자신이 안쓰럽게 느끼게 되었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각자 우주의 역사를 만들며 몸과 기억으로 기록을 남기는 일을 하는 지 모르겠다. 이런 면에서 보면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창조주께서 우리에게 더불어 주신 시간이라는 것은 생명과 함께 가장 큰 축복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여기서 더 가치있게 산다며, 무언가를 부던히도 하려는 것은 우리가 이세상에 존재 하는 그 커다란 의미에 비하면 정말 보잘 것없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죽기전에 사람은 자신히 살아왔던 생애가 주마등 처럼 쓰윽 지나간다고 하던데, 난 갑자기 지하철에서 저절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내가 어떻게 살아와서 여기에 있게 되었는지. 부끄러운 일도 많고 후회되는 일도 있지만, 내가 살아왔던 내 인생은 누구도 똑같이 재현 할 수 없고 (가장 큰 이유는 시간이 이미 흘러버렸기에, 아무리 드라마에서 응답하라고 외친다고 해도 대답은 없을 것이기에..) 그러기에 이미 그 자체로 하나의 커다란 우주, 충분히 존중 받을 만한 것이지 않을까. 누가 감히 함부로 그 시간의 켜가 쌓여 있는 한 사람의 인생을 평가, 판단 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신에 대한 도전이다. 우리는 신이 아니고 인간인라는 것을 인정하면 한없이 작아지며, 신이 허락한 시간안에 존재하는 "나"를 느끼게 될때 비로소 한없는 자존감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나를 존중 할 수 있게 된 후에야 비로서 다른 이에 대해 진정으로 존중할 준비가 되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