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로테르담까지
NanJoo의 수다2008. 3. 26. 06:57
갑자기 뉴욕사진을 올리면서 사진을 몇장 훝었더니 뉴욕이 그리워진다.
사람 마음 참 간사한것이 특히 내 경우는 더 그런 것 같다.
처음 뉴욕에 도착하여 난생 처음 해보는 외국 생활. 영어도 충분히 준비 못하고 가자마자 십여일 만에 집구하고 학교 등록에 정신 없는 생활. 그리고 어마어마한 뉴욕 집값과 물가등등에 마음 고생 몸 고생 하면서 뉴욕이 금새 지긋지긋 해져 버렸었다. 쩡은 그래도 뉴욕이라고 좋아하려고 이리저리 노력을 했지만 난 정말 학교만 빨리 끝마치고 한국에 가겠다는 소리를 입에 달고 살았다. 그렇게 살기를 일년 바퀴벌레 소굴이었던 퀸즈의 집을 떠나면서 생활이 많이 바뀌었다. 일년 동안 방황하면서 정착하지 못했던 교회도 In2에 등록하면서 교회 친구들도 많이 생겼고 교회에서 봉사도 하게 되었고, 깨끗한 집과 좋은 동네, 많은 부분들이 내가 가지고 있던 뉴욕에 대한 인상을 변화 시켰다. 그러면서 또한 하나님과의 관계도 너무 좋아져서 처음 하나님을 만나고 지금까지 중에 제일 좋았던 시기였던 것 같다. 걸어다니면서도 절로 웃음이 나왔고 짬날때마다 기도를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면서 놀라기도 했었다. 덩달아 학교 생활도 너무 재미있었고 많은 것들이 감사가 넘치는 삶이었다.
그런 생활중에 교수님에게서 이메일 한통을 받고 로테르담행을 혼자 살짝 고민하다가 관두었었다. 첫번째 이유는 NOX에서 사람을 너무 시급하게 구하고 있던 터라 학교 일정과 맞지 않았었다. 두번째 이유는 나 인턴하자고 쩡까지 휴학시키고 간다는 것은 너무 이기적인 것 같아서 아에 이야기도 끄내지 않았었다. 학기가 거의 끝나갈때 즈음 쩡에게 지나가는 이야기로 이야기를 했었는데 생각보다 너무 적극적으로 지원을 해주는거였다. 그에 힘입어 지원을 하고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한국의 집에서도 좋아해 주시고 뉴욕의 사람들도 축하해 주었다. 급하게 뉴욕을 정리해야 했다. 솔직히 이때까지는 그냥 되면 좋고 아니면 말라는 마음으로 충분히 기도하면서 지원한것이 아니었기에 네델란드 행이 하나님이 보내신다는 확신을 가지지는 못했다. 이런 나에게 하나님은 몇가지 기적같은 일을 경험케 하시면서 확신을 보여주셨다.
1.뉴욕의 집은 학생이 구하기는 쉽지 않기에 우리도 일년치 렌트비를 한꺼번에 내고 계약을 해 놓은 상태라 법적으로 중간에 계약을 파기하면 우리는 돈을 한푼도 돌려 받을 수 없는 상태라는 소식을 접했다. 사실 뉴욕에서는 집을 서브렛을 주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기에 집에 대한 걱정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겨울이고 집값이 비싼 가격도 아니었지만 만만한 가격도 아니었기에 생각보다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집값에 가구 사용료까지 덧붙여 돈을 조금 더 올려 받아볼까 했던 우리에게 몇명의 사람들과의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정직을 원하셨다. 거기에 집주인 몰래 서브렛을 주려던 마음도 정직하게 집주인과 이야기 하기를 원하셨다. 깐깐하다고 생각했던 집주인에게 은근히 걱정하며 말했지만 생각보다 집주인은 축하까지 해주면 흔쾌히 다른 사람을 구해보자는 식으로 나왔다. 정직하게 집값을 고시하고 사람을 기다렸으나 사람들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우리의 조건과 거의 흡사한 사람이 출국 예정 5일전에 나타났다. 부랴부랴 협상하고 집주인에게 알렸다. 집주인도 좋아할것이라 생각했지만 집주인은 몇번의 통화 끝에 거부를 했다. 이유는 너무 돈을 깍으려 한다는 것과 두명이서 쓸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는 것이다. 막판에 나타난 사람들이 너무 반가워 두명이 쓰면 안된다는 집주인의 말을 무시하고 그사람들과 입을 맞춰 집주인을 속이기로 한 것이었는데 그것이 어떤 이유에서인지 집주인이 알아버린 것이다. 그래서 출국 4일전 협상상대와 틀어지고 다시 원점이 되었다. 그때부터 우리는 모든 것을 포기했다. 어느정도 경제적 손해도 각오 했고 집을 계속 계약을 유지하고 싶던 마음도 포기하고 가구를 창고에 넣고 집주인의 선처를 바랄 생각이었다. 그러던 중 출국 3일전 뜻하지 않은 한 사람에게 전화가 왔다. 바로 옆동네에 살고 있던 사람이었다. 원래 스투디오를 혼자 렌트 할 생각이 전혀 없던 사람이었으나 그 날 저녁에 사다 두었던 음식 재료들을 룸메가 친구들과 요리를 해먹어 짜증에 혼자사는 스투디오를 뒤지기 시작한 사람이었다. 자격 조건은 그 전에 왔던 어떤 이들보다 완전히 완벽한 사람이었다. 한국인이지만 미국 시민권자에 변호사 사무소에서 근무하고 부모님도 미국에 계시고. 게다가 분명히 혼자 살 사람인 것이다. 출국 예정 3일전에 만나서 집 보여주고 확답을 받고 집주인의 스케쥴 때문에 출국 하루전 저녁에 만나 집을 계약 했다. 하나님께서는 참 마지막에 역사하시는 것을 즐기시는 듯 하다. 그렇게 계약을 했다. 원래는 우리의 출국일 당일부터 그 사람에게 넘기기를 원했으나 그 분의 스케쥴때문에 약 일주일 정도는 우리가 부담하고 집을 비워두기로 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너무 감사하게 해결이 되었다. 가구도 옮기지 않아도 돼었고 우리가 좋아하던 그 집도 내년에 다시 미국에 가서 살수 있게끔 모두와 잘 이야기가 되었다.
2. 모든 것을 마무리 짓고 출국일이 되었다. 바로 전날까지 당장 집이 어떻게 될지 확신을 할수 없는 상황인지라 짐을 싸고 준비할수 있는 마음적 여유가 없었다. 당일이 되서야 그동안 미뤄뒀던 집을 정리하고 짐을 본격적으로 싸기 시작했다. 쩡의 학교동생인 화은양의 큰 도움으로 무사히 시간내에 짐을 싸고 공항으로 향했다. 이 시기에 씸군이 한국에 결혼 하러 들어가면서 아끼는 애마 아제라를 우리에게 대여해 주고 갔기에 뉴욕을 떠나기 전에 여기저기 잘 돌아 다니며 좋은 시간을 보냈고 또 마지막 떠나는 날도 씸군이 뉴욕으로 경로를 변경 주면서 공항까지 차를 가지고 갈수 있게 되었다. 막상 짐을 싸기 전에는 몰랐지만 짐을 싸보니 어마어마했다. 트렁크에 뒷좌석까지 가득 채우고서도 쩡은 자잘한 짐을 안고 타야 할 정도였다. 그리고는 공항에 갔다. 평상시 JFK까지는 한시간이 채 안걸리는데 이날은 한시간이 좀 넘게 걸렸다. 짐을 싸는데 시간이 많이 할애가 되서 공항까지는 시간이 촉박했다. 밤 10시 비행기였으니 적어도 8시 30분까지는 도착해야 했지만 도착한 시간은 8시 45분. 부랴부랴 주차하고 체크인 데스크에 갔더니 9시가 다되어 있었다. 표를 제시하니 돌아온 대답은 "리턴 티켓은?" 당황 스러웠다. 아니 일하러 가는 사람에게 무슨 리턴 티켓을 요구하나 하면서 3개월간 체류 할 생각이라고 했다. 실수였다. 이때 나는 회사에서 일단 관광비자로 들어와서 일하면서 워킹퍼밋은 천천히 작업하자고 이야기 된 상태였기에 나에게는 아무런 비자가 없었다. 유럽은 비자없이 3개월간 체류할수 있었으나 쩡과 나는 아무래도 엄청난 짐때문에 여행객으로는 볼수 없는 상황이었고 게다가 내가 인정을 해버린 셈이었다. 5분 후면 문을 닫아야 한다며 지금 당장 리턴티켓을 사오던지 아니면 내일 다시 오라는 것이었다. 그 자리에서 리턴 티켓을 구입하려면 한사람당 약 3000불을 요구했다. 말도 안되는 가격이었다. 할수 없이 탑승을 포기했지만 편도 비행기까지 날릴수는 없었다. 비행기를 구입한 여행사에게도 문의했지만 같은 대답만 했다. 자신들은 이미 판매되고 비행기 탑승 수속이 마감된 후에는 책임을 지지 않는 다는 것이었다. 여러명의 상담원과 상담끝에 한 마음씨 좋은 직원이 자신들을 통해 하는 것보다 곧바로 KLM 항공사를 통해 티켓을 바꿔보는 것이 경제적일 것이라는 이야기를 해줬다. 일단은 공항에서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이때 만약 씸군의 차를 공항까지 가지고 오지 못했다면 우리는 그 많은 짐을 지고 다시 집으로 택시를 타든 하며 어마어마한 돈과 고생을 하며 집으로 돌아와야 했을 것이다. 거기에 집 계약이 기존에 우리가 원하던 대로 출국일부터 계약이 되었다면 우리는 돌아갈 집도 없을뻔 했다. 비행기를 놓친 것은 속상한 일이었지만 그 이후의 상황이 정말 다행스럽다고 여기며 하나님의 세세하게 우리를 위해 미리 준비하신 일에 감사했다.
3. 집에 돌아와 보니 비행기 스케쥴이 틀어지면서 호텔도 변경해야 했다. 로테르담에 도착해서 집을 구하기 전까지 4일정도 호텔에 머물 예정이었다. 그러나 하필 이때에 로테르담은 일년에 한번씩 있는 국제 영화제가 한창일때라 방이 없었다. 호텔이 취소가 되었다. 가서 머물 곳을 다시 찾기 시작했다. 스키폴 공항에서 로테르담까지 짐을 옮길 걱정이 먼저 되었다. 만약에 그냥 비행기를 탔다면 그 어마어마한 짐때문에 네델란드에 도착후 난처한 상황이 전개 됐을것이다. 그 생각을 하며 공항까지 픽업 나올수 있는 교통수단과 숙소를 알아보다 전에 살짝 흘려보었단 한인 민박을 찾아내었다. 로테르담 시내와 조금 거리가 있긴 했지만 우리의 사정을 들은 주인 아주머니께서는 스키폴까지 픽업 나와 주시겠다 해주셨다. 거기에 호텔값에 비해 저렴한 가격도 감사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방법으로 내가 계획했던 것들을 하나님의 계획으로 바꾸시는 것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공항에 표를 바꾸기 위해 갔다. 여기저기서 수집한 정보에 따르면 가장 싸게 표를(리턴티켓이 아닌 놓친 비행기표로 다시 비행스케쥴을 잡기위한) 바꾸려며는 한사람당 200달러씩은 예상이 되었다. 그나마도 공항 KLM에서 해줘야 하는 것이고 그들이 거부하면 300달러씩 내고 여행사에서 바꿔야 하는 상황이었다.(표값은 350달러였다.) 공항에 가서 KLM 직원에게 표를 제시하고 상황 설명을 하자 해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한사람당 200달러씩 내야 한다 했다. 예상했던 바라 감사하며 안심을 하고 있었다. 잠시동안의 티켓팅 작업을 한후에 표를 내미는 그 직원은 "돈 낼 필요 없어!" 이러는 것이었다. 잠시 벙진 상태여서 이 뜻이 무엇일까 혹시 내가 잘못 알아 들은 것일까. 영어란...참.. 고민을 한후 이유를 물었다. 이유는 명확하게 이해되진 않았지만 우리가 티켓팅 바로전 항공사에서 거부해서 탑승을 못했다는 것이 어딘가 기록에 남겨져 있었던 모양이었다. 많은 이에게 전화로 상담을 했어도 이런 경우가 혜택을 받을 것이라고 말해 준이는 단 한명도 없었다. 이런 기적 같은 일이 또 한번 우리에게 일어 난 것이다.
3. 그리고 뉴욕을 뒤로 하여 로테르담에 도착하였다. 과연 주인 아저씨의 픽업이 아니었다면 엄두가 안되는 짐들과 함께 민박집에 도착했다. 주인 아저씨와 아주머니께서 너무 친절하게 잘 해 주시고 맛있는 한식과 아침에 먹는 토스트까지 그곳에 가게 된 것이 너무 감사하게 생각되는 민박집이었다. 게다가 네델란드에서 집을 구하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결국 15일을 민박집에서 생활 한후에 가까스로 지금 살고 있는 집을 구하게 되었는데. 원래 예정대로 호텔에 머물렀다면 정말 난감 했을 것이다. 민박집의 배려로 장기간 편하게 지냈고 처음 도착한 우리에게 이것저것 정보도 많이 알려주셔서, 그나마 여기에 빨리 적응 할수 있게 된 것 같다.
사진은 떠나는날 공항에서 만난 마크최 목사님께서 주신 코코호도. 목사님은 우리가 떠나기 일주일 전에 온누리교회에서 하는 목사님들 세미나에 10일정도 계시다 오시는 일정때문에 다시 돌아오시기전 우리는 떠나게 되어있어 미리 기도도 받고 인사도 다 드렸었다. 하지만 위에 쓴 대로 일정이 밀리는 바람에 우리의 출국일로 잡힌날이 공교롭게도 목사님 귀국일이었고 뒤늦게 사모님께 들었는데 터미널도 같고 시간도 거의 겹치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이번에는 조금은 여유롭게 일찍 가서 수속을 다 마치고 목사님을 기다렸다 또 한번 기도 받고 이런 선물까지 받으며 뉴욕을 떠날 수가 있었다.
이렇게 세세한 하나님의 계획속에서 도착한 네델란드는 분명 하나님이 보내신 것이 확실하다고 믿으며 많은 기적같은 일들이 내 삶에 계속 되기를 기대하며 지내고 있다.
원래 이 내용은 우리가 한창 이 일을 격고 있을때 걱정하면서 기도해 준 모든이들과 함께 공유하고 싶어 In2 싸이월드 40일 새벽기도 간증문에 올릴 예정이었으나. 뉴욕과 로테르담으로의 이동과 새로운 환경에 적응한다는 핑계와 게으름 그리고 나에게는 너무나도 소중한 하나님께서 내 삶에 역사하신 경험이었는데 나의 부족한 글 솜씨에 평가절하될까 하는 부담감때문에 미루다 이제야 블로그에 올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 글의 목적은 보는 이들이 같이 공감하고자 하는 의도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본인의 기록을 위함이니 어마어마한 양에 대해서는 이해를 부탁합니다. 이 글을 다 읽고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 생각하지만..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