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Joo의 수다
권위적인 태도에 대해,
ideasang
2011. 12. 29. 04:32
무슨 연유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나에게는 강압적인 태도에 대한 알러지 반응이 있다. 평상시에는 지나치리 만큼 다른이에게 싫은 소리를 한다거나 불편한 관계를 만드는 것을 꺼려 하는 자세로 지내는 나이지만, 상대방의 강압적인 태도, 권위적인 태도가 반복적으로 드러나게 되면, 내 인식에서는 자동적으로 그 사람을 사람취급을 안해버리게 된다. 당연히 사람취급을 안하니, 그 사람과 말 섞는것도 싫어하게 되고, 남들이 차마 하지 못하는 말들도 거침없이 쏘아 붙여 버리곤 한다. 그 결과는 항상 나의 손해로 끝나게 된다. 이를테면 싸가지 없는 녀석이었다는 평가나, 경제적인 손실등등.. 몰론 나도 그리 바른태도라고 보진 않고 고쳐보려 노력중이다. 예수님은 네 이웃과 형제를 사랑하라 하셨으니, 그리 부족한 사람들도 내가 사랑해야 하는 대상인 것은 나도 안다. 하지만 마치 알러지처럼, 나도 모르게 통제가 되지 않는 감정들을 다스리기란 쉬운일은 아니다.
오늘 김문수 도지사의 소방교위에 대한 무례한 언사와 뒷처리까지의 기사를 접하고, 또 그런 알러지 반응이 일어났다. 귀차니즘의 최고봉을 달리고 있는 요즘 이렇게 분개하여 글을 쓰게 만든 것이나, 경기도지사 홈페이지를 방문하여, 한마디 써주고자 했던 것만 봐도 분노는 나의 힘이라 말할만 하다.
한국보다는 미국에서 사는 것이 편하다고 느끼는 것 중 하나가, 미국에서는 권위적인 태도가 드러나지 않는다. 일단 언어에서부터 예의바른 말은 있어도 존대는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무리 나이 많은 사람이나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과 만나게 될때도, 그들의 속마음이야 어떨지 모르겠지만, 겉으로는 모든이에게 쿨하고 프렌들리 한것이 이들의 이상적인 태도이기 때문에, 왠만한 정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권위적인 강압적 태도를 드러내고 보이진 않는다. 간혹 그런 이들도 있지만, 모두들 또라이 취급을 하는 일부 사람들의 이야기 일뿐.
특히 한국에서는 권력을 가진 자리에 있는 사람은, 쉽게 착각에 빠지게 되는 것 같다. 도지사나 국회의원, 대통령 같은 자리는 그 자리가 무엇을 위해 있는 자리인지 본질은 망강한채 그 자리를 위해 생겨난 부수적 힘들을 만끽하는데 의미를 찾는 것 같아 보일때가 많다. 도대체 도지사는 119에 전화애서 나 도지사인데 하면, 그 급한상황에 긴장감있게 전화를 받는 자리에서 아이구구 도지사님 이 누추한 곳까지 먼일로 전화를 주셨습니까 하면서 꺼뻑 죽기를 예상했던 것일까? 김문수 도지사 그래도 과거에 인권운동이다, 요즘에 택시 운전을 하며 도민과 자연스레 만나는 행적을 보며, 그래도 한나라당에서 생각있는 사람일 것이라 생각했던 나의 선입견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다. 119에 전화해서 저런 태도를 보이는 것을 보면, 비단 이번 문제뿐만 아니라, 그동안 도정을 해오면서 무수히 해왔을 비상식적인 권위적인 언사와 태도들이 가히 상상이 가는 바이다.
마무리 하며, 요즘 트윗으로 팔로하고 있는 옛 대왕님들이 말들을 몇개 적어보자 한다.
누구라서 선을 좋아하고 악을 미워하며, 죽음을 싫어하고 삶을 좋아하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사람이 스스로 악에 물들고, 죽음에 이르는 길을 선택하는 것은 그릇된 지혜와 탐욕으로 인해 구속받기 때문이다. (홍재전서175)
소인小人을 공격할 만한 능력을 가진 사람은 있지만, 소인을 용납할 만한 국량을 지닌 사람을 만나기 힘들구나. 군자는 다른 사람에게 자기의 기분을 통쾌하게 풀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일득록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