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Joo_arch
건축가의 문제점
ideasang
2011. 6. 19. 18:39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10619800039
링크된 기사를 통해 보게 된 성남시청사의 문제점은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여러 의문 사항을들 확인을 시켜 준 듯 하다.
나같이 아직 실무를 많이 해보지 않은 초짜 건축가들은 실제로 지어진 후의 건축물의 사용에 관해 피드백을 가질 기회가 많이 없어서 가지고 있는 답답함이 많다.
그중에서 글라스 커튼월에 관한 한. 조금만 관심이 있는 사람이면 굳이 건축 전공을 하지 않았더라고 의문을 가질 수 있는 문제 일텐데..
흔히 온실효과라고 하는 원리에서 생각해 보자면.. 우리가 아는 비닐하우스는 투명한 비닐 제질로 낮 시간의 태양열을 가두고 실내의 온도를 높이는 원리이고, 이는 농작물을 위해 필요한 시설로는 매우 경제적이고 좋은 시스템일 수 있지만 과연 같은 상황속에 놓인 거주의 환경은 어떨지 궁금한 점이 많았다.
아무리 이중창 삼중창 커튼월을 써 단열 성능이 우수하다고 하지만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온실 효과는 어쩔 수가 없었을 것이다.
훤히 뚤려있는 투명한 유리를 통해 막힘없이 들어온 태양의 복사열, 보통 커튼월은 개폐가 되지 않는 고정식으로 되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들어온 열을 내보내기 위해선 특별히 공기 순환의 경로를 만들어 주지 않고서는 내부에 그대로 쌓이게 된다. 물론 겨울철에는 따뜻할 수 있겠으나 여름철에는 땡볕에서 일하는 것 못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이런 커튼월의 건축물은 대부분 자연 환기 보다는 내부의 공조 시스템으로 온도를 유지하는 경우가 다반사이고, 덥혀진 온도를 끌어 내리 위해 빵빵하게 틀어야 하는 냉방기도 시청사라는 이유로 제한이 있게 되다 보니 이런 현상이 충분히 벌어 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흔히 노먼 포스터 경을 필두로 한 하이테크 건축그룹들이 컨튼월+친환경 시스템을 이용하여 건축물의 친환경성을 강조해 오고 또 성공적인 사례들을 내놓으면서 자칫 글라스 커튼월 자체가 친환경적인 건축물로 오인되는 사례가 많이 생겨 버린 듯 하다. 실제로 노먼포스터경의 런던 시청사나 스위스 뱅크 건물은 디자인 자체가 내부의 공기 순환을 제일로 고려하여 디자인 되어 있고 시스템도 그에 맞춰 잘 갖춰져 있지만. 실제로도 그 이론상의 원리가 실효성을 거두고 있을지 꼭 한번 확인해 보고 싶은 사안이긴 하다. (하지만 그 시도 자체는 정말로 찬사를 보낸다.)
여기서 생각해 보는 것은 단지 글라스 커튼월 시스템의 문제는 아니다.
요즘 계속 가지고 있는 생각은 현재 나를 포함한 많은 건축가들은 건축가들을 위한 건축을 하고 있지 않나 생각이 든다.
학교의 교육에서 부터, 실제 그곳에 거주하는 사용자의 입장보다는 건축가로서 어떤 "작품"을 만들지에 대해 고민하게 하고, 그런 교육을 받은 우리들은 건축은 "작품"이다, 더 나아가서 건축은 예술이다 아니다 하는 논란으로 건축가=예술가 라고 생각을 하게 된다.
예술 작품이라고 생각을 하다 보니 생활의 편리성보다는 어떠한 사상(이를테면 데리다 들루즈 푸코등등..)을 건축물을 통해 나타낼까..혹은 어떻게 하면 내가 가지고 있는 새로운 기술(이를테면 우리학교를 비롯한 디지털 세대들이 하고 싶어하는 유려한 곡선과 자연의 형상을 "닮아만" 있는 형상등등..)을 적용해 볼까..
이런 고민들이 더 많은게 사실이다.
나는 이전에 강의를 할때도 학생들에게 가끔씩 했던 말이고 나 스스로에게도 계속 기준을 잡아가기 위해 생각하곤 하는 말이
건축가는 건축주의 돈으로 그들의 요구를 만족 시키기 위해 최대한의 서비스를 제공해 줘야 하는 직업군이라는 것이다.
물론 나같은 초짜 건축 하는 사람이 감히 말도 꺼내지 못할 정도로 한국에는 훌륭한 건축가들이 많이 계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의 큰규모 건축 설계 사무소 위주의 한국의 건축 사정은 깊이보다는 상업적 자극들이 더 추구 되고 있는게 아닌가 싶다.
대표적으로 디자인 서울을 불러 외치는 서울시의 정책하에 들어서고 있는 건출물들도 화려하고 자극적이지만 과연 디자인 "서울" 이라고 하는 지역성이
조금이라도 고려가 되었을까 하는 설계 안들이 대다수가 아닌가 싶다..
너 나은 나중을 위해 비판은 항상 필요하고 존재 해야 한다 하고.. 나도 이런 비판적인 글은 공식적으로는 처음 써보지만. 사실은 나를 위한 생각을 정리 한 것이다.
계속 가볍고 흥미로운 접근을 선호해 온 나였지만, 최근 부쩍 심경의 변화를 느끼고 일종의 책임감을 느끼게 되면서 이런 저런 생각이 많아 진다.
나부터 더 깊이 있고 진지하게 임해 야 겠다는 생각...물론 쉽지 않은 길이겠지만..
링크된 기사를 통해 보게 된 성남시청사의 문제점은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여러 의문 사항을들 확인을 시켜 준 듯 하다.
나같이 아직 실무를 많이 해보지 않은 초짜 건축가들은 실제로 지어진 후의 건축물의 사용에 관해 피드백을 가질 기회가 많이 없어서 가지고 있는 답답함이 많다.
그중에서 글라스 커튼월에 관한 한. 조금만 관심이 있는 사람이면 굳이 건축 전공을 하지 않았더라고 의문을 가질 수 있는 문제 일텐데..
흔히 온실효과라고 하는 원리에서 생각해 보자면.. 우리가 아는 비닐하우스는 투명한 비닐 제질로 낮 시간의 태양열을 가두고 실내의 온도를 높이는 원리이고, 이는 농작물을 위해 필요한 시설로는 매우 경제적이고 좋은 시스템일 수 있지만 과연 같은 상황속에 놓인 거주의 환경은 어떨지 궁금한 점이 많았다.
아무리 이중창 삼중창 커튼월을 써 단열 성능이 우수하다고 하지만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온실 효과는 어쩔 수가 없었을 것이다.
훤히 뚤려있는 투명한 유리를 통해 막힘없이 들어온 태양의 복사열, 보통 커튼월은 개폐가 되지 않는 고정식으로 되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들어온 열을 내보내기 위해선 특별히 공기 순환의 경로를 만들어 주지 않고서는 내부에 그대로 쌓이게 된다. 물론 겨울철에는 따뜻할 수 있겠으나 여름철에는 땡볕에서 일하는 것 못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이런 커튼월의 건축물은 대부분 자연 환기 보다는 내부의 공조 시스템으로 온도를 유지하는 경우가 다반사이고, 덥혀진 온도를 끌어 내리 위해 빵빵하게 틀어야 하는 냉방기도 시청사라는 이유로 제한이 있게 되다 보니 이런 현상이 충분히 벌어 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흔히 노먼 포스터 경을 필두로 한 하이테크 건축그룹들이 컨튼월+친환경 시스템을 이용하여 건축물의 친환경성을 강조해 오고 또 성공적인 사례들을 내놓으면서 자칫 글라스 커튼월 자체가 친환경적인 건축물로 오인되는 사례가 많이 생겨 버린 듯 하다. 실제로 노먼포스터경의 런던 시청사나 스위스 뱅크 건물은 디자인 자체가 내부의 공기 순환을 제일로 고려하여 디자인 되어 있고 시스템도 그에 맞춰 잘 갖춰져 있지만. 실제로도 그 이론상의 원리가 실효성을 거두고 있을지 꼭 한번 확인해 보고 싶은 사안이긴 하다. (하지만 그 시도 자체는 정말로 찬사를 보낸다.)
여기서 생각해 보는 것은 단지 글라스 커튼월 시스템의 문제는 아니다.
요즘 계속 가지고 있는 생각은 현재 나를 포함한 많은 건축가들은 건축가들을 위한 건축을 하고 있지 않나 생각이 든다.
학교의 교육에서 부터, 실제 그곳에 거주하는 사용자의 입장보다는 건축가로서 어떤 "작품"을 만들지에 대해 고민하게 하고, 그런 교육을 받은 우리들은 건축은 "작품"이다, 더 나아가서 건축은 예술이다 아니다 하는 논란으로 건축가=예술가 라고 생각을 하게 된다.
예술 작품이라고 생각을 하다 보니 생활의 편리성보다는 어떠한 사상(이를테면 데리다 들루즈 푸코등등..)을 건축물을 통해 나타낼까..혹은 어떻게 하면 내가 가지고 있는 새로운 기술(이를테면 우리학교를 비롯한 디지털 세대들이 하고 싶어하는 유려한 곡선과 자연의 형상을 "닮아만" 있는 형상등등..)을 적용해 볼까..
이런 고민들이 더 많은게 사실이다.
나는 이전에 강의를 할때도 학생들에게 가끔씩 했던 말이고 나 스스로에게도 계속 기준을 잡아가기 위해 생각하곤 하는 말이
건축가는 건축주의 돈으로 그들의 요구를 만족 시키기 위해 최대한의 서비스를 제공해 줘야 하는 직업군이라는 것이다.
물론 나같은 초짜 건축 하는 사람이 감히 말도 꺼내지 못할 정도로 한국에는 훌륭한 건축가들이 많이 계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의 큰규모 건축 설계 사무소 위주의 한국의 건축 사정은 깊이보다는 상업적 자극들이 더 추구 되고 있는게 아닌가 싶다.
대표적으로 디자인 서울을 불러 외치는 서울시의 정책하에 들어서고 있는 건출물들도 화려하고 자극적이지만 과연 디자인 "서울" 이라고 하는 지역성이
조금이라도 고려가 되었을까 하는 설계 안들이 대다수가 아닌가 싶다..
너 나은 나중을 위해 비판은 항상 필요하고 존재 해야 한다 하고.. 나도 이런 비판적인 글은 공식적으로는 처음 써보지만. 사실은 나를 위한 생각을 정리 한 것이다.
계속 가볍고 흥미로운 접근을 선호해 온 나였지만, 최근 부쩍 심경의 변화를 느끼고 일종의 책임감을 느끼게 되면서 이런 저런 생각이 많아 진다.
나부터 더 깊이 있고 진지하게 임해 야 겠다는 생각...물론 쉽지 않은 길이겠지만..